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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2.26 『나쁘게 말하다』
  2. 2013.02.26 『잎 속의 검은 잎』
  3. 2013.01.13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나쁘게 말하다』

poem 2013.02.26 03:10 by Zetetic

나쁘게 말하다   - 기형도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어떤 그림자는 캄캄한 벽에 붙어 있었다

눈치챈 차량들이 서둘러 불을 껐다

건물들마다 순식간에 문이 잠겼다

멈칫했다, 석유 냄새가 터졌다

가늘고 길쭉한 금속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잎들이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손과 발이 빠르게 이동했다

담뱃불이 반짝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던 행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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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속의 검은 잎』

poem 2013.02.26 02:52 by Zetetic

기형도 유고 시집 <잎 속의 검은 잎>

정리: 문학평론가 김현, 문학과지성사 펴냄


作(시작) 메모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 11)   - 기형도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1988. 11) - 기형도



1989년 3월 7일. 기형도의 죽음에 대해 "원효가 사복의 어머니를 위해 부른 계송의 어조"의 김훈의 추모사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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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poem 2013.01.13 23:03 by Zetetic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코멘트

김지하 시인과 같은 1941년생 인데다 서울대 동문인 김광규 시인의 시를 2013년에 돌아보는 일은 시인은 가고 시만 남았다는 누구의 평가만큼이나 아스트랄한 일인 것 같다. 때마침 소설가 장정일이 한겨레 기고글로 김지하의 발언과 행보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제목이 "글 밖의 김지하, 서글픈 자기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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