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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poem 2013.01.13 23:03 by Zetetic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코멘트

김지하 시인과 같은 1941년생 인데다 서울대 동문인 김광규 시인의 시를 2013년에 돌아보는 일은 시인은 가고 시만 남았다는 누구의 평가만큼이나 아스트랄한 일인 것 같다. 때마침 소설가 장정일이 한겨레 기고글로 김지하의 발언과 행보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제목이 "글 밖의 김지하, 서글픈 자기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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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review 2012.11.19 00:25 by Zetetic

<글루미 선데이, Ein Lied von Liebe und Tod>


1999년 작(作)

롤프 슈벨(Rolf Schubel) 감독

에리카 마로잔, 조아킴 크롤, 스테파노 디오니시 주연







이별 혹은 죽음을 부르는 음악



헝가리어로 ‘Szomorú Vasárnap’, 글루미 선데이로 통용되는 ‘우울한 일요일’이란 이 곡은 1933년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레죄 세레스(Rezső Seress)가 최초로 발표한 연주곡이라 알려진다. 이후 이 음악을 연주 혹은 감상한 사람들 중 186명이 8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연쇄 자살하면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는 악명이 부제처럼 따라 다니는 곡이다. 실연에 대한 절망의 감정으로 작곡한 이 곡을 발표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피아니스트 레죄 세레스와 관련된 일화와 양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유럽대륙을 휩쓸던 시대상황 그리고 1988년 출간된 닉 바르코의 소설 <슬픈 일요일의 노래(The Song of Gloomy Sunday)>의 픽션에 착안해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독일 태생의 다큐멘터리 감독, 롤프 슈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글루미 선데이>다.

 

자살은 예술가들의 삶과 남겨진 작품들에 비장미를 더해주는 아주 좋은 요소인 듯하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작중 주인공인 베르테르의 자살이 당시 독일 청년들의 모방 자살을 유도하며 사회적 문제가 됨에 따라 이젠 ‘모방 자살’이란 의미 자체가 ‘베르테르 효과’라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의 자살이 그랬고, 락밴드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도 그랬다. <인간 실격>의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도 그랬고, 화가 고흐의 자살도 그랬다. 심지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도 그랬다. 이처럼 유명인이나 아티스트 그리고 작가들의 자살은 살아생전 그들이 말하고자 한 정념에 시위성을 더해 대중에게 전해진다. 그것이 반드시 자살 당사자들의 실존적 고민에 연유한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울한 부다페스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파리로 불릴 만큼 유럽 특유의 건축 양식과 아름다운 야경 그리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영화는 이곳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부다페스트의 귀품 있는 조그만 레스토랑의 지배인인 자보(조아킴 크롤)와 그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돕는 일로나(에리카 마로잔)는 연인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스토랑의 전속 피아니스트를 뽑기 위한 오디션을 보는 자리에 한 남자가 마감시간이 지난 후에야 찾아온다. 오디션 시간이 지났다며 오디션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하는 자보를 일로나가 설득해 그 남자는 자신이 작곡한 창작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일로나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쉬)의 첫 만남이자 그의 무제의 자작곡 ‘글루미 선데이’가 처음으로 울려 퍼지는 장면이다. 일로나가 안드라스에게 오디션의 기회를 주자고 자보를 설득하는 목소리에서 이미 일로나가 안드라스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정해진 수순처럼 안드라스는 레스토랑의 전속 피아니스트로 발탁되고 그의 자자곡인 글루미 선데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레스토랑은 성업하게 된다. 당연히 일로나와 안드라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극 전개다.






일로나의 오랜 연인이었던 자보는 새로이 자라나는 안드라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눈치 채고는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명대사중 하나를 던진다. “난 신경 쓰지 마, 내가 말했었지? 누구나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사랑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그렇게 일로나를 사이에 두고 자보와 안드라스는 각자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어느 씬에선가는 이 셋이 피크닉을 나가서 일로나를 가운데에 두고 나란히 누워서는 자보에게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안드라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모르겠어, 일로나와 4년을 알아오면서 점차 알게 된 것이 있어. ‘누구나 모두 좋아할 수 있다.’ 육체를, 정신을. 무엇이든지 그녀를 채워주는 것을, 갈망하는 것을...” 그러고서는 일로나에게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한편 일로나를 혼자서 사모하던 독일인 사업가 한스는 그녀에게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게 되고, 좌절감에 강물에 몸을 던지지만 자보가 그를 구해주며, 둘은 일로나를 가지지 못하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며 친구가 된다. 레스토랑이 성업하고 안드라스의 연주곡 글루미 선데이가 널리 퍼지면 퍼질수록 신문지상에서는 이 곡을 듣다가 자살한 사람들의 사연에 대한 기사가 줄을 이룬다. 이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안드라스는 레스토랑에서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한스는 독일군 장교가 되어 유태인을 탄압하는 나치즘에 가담하지만 종종 자보의 레스토랑에 들러 뒤바뀐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유대인인 자보와 안드라스를 뛰어넘는 자신의 우월성을 일로나에게 어필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한스는 돈을 받고 아우슈비츠행 열차에서 부다페스트의 상류층과 지식인들을 빼내주는 브로커 역할을 하게 되고, 자보 또한 이런 한스의 작태에 염증을 느끼지만 대항하지 못하는 절망감만이 깊어질 뿐이다. 한스는 자보를 아우슈비츠행 열차 명단에서 빼내 달라는 일로나의 부탁을 미끼로 일로나를 강간하고 자보는 열차에 실려 나치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영화는 일로나가 누군지 모를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모습으로 안드라스의 무덤에서 다시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씬을 끝으로 맺어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비춰지는 백발의 노인이 된 한스는 전후 성공한 독일인 사업가로 또 장교시절 수많은 유대인을 아우슈비츠행으로부터 구해준, 시대의 양심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다 80세를 기념하기 위해 젊은 시절 자주 찾던 부다페스트의 자보의 레스토랑에서 저녁만찬을 즐기다 ‘글루미 선데이’를 듣곤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다. 이것이 익히 알려진 일련의 영화 스토리이다.



우울한 날, 그리고 우울한 음악


OECD 회원국 중 자살율 1위인 국가에서 살아가는 현실이나, 청소년 사망요인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한다는 뉴스 기사 따위를 보지 않더라도, 요즘은 치정에 의한 살인이나 자살 소식이 유독 눈에 띄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우울증에 대한 진단도 넘쳐나고 말이다. <글루미 선데이>는 영화의 제목 그 스스로가 '자살'에 대한 연쇄적 충동을 상기시키는 고유명사화 된 음악이자, 스토리이다. 오늘날 우울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원치 않는 우울에서 헤어나오고자 하는 사람치고 '헤더 노바(Heather Nova)'의 음성으로 녹음 된 <Gloomy Sunday>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와 같이 과연 음악 따위가 '죽음'의 메세지를 우리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일까.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와 같은 곡에서 우리는 '죽음'을 음미해낼 수 있는가. 소녀는 차치하고 '죽음'을 말이다. 다양한 형태의 죽음 중 '자살'에 부합하는 음의 조화가 과연 존재할까. 그렇다면 그런 음악을 듣는 우리에게 그 음들은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대니얼 J. 레비틴의 저서 <호모 무지쿠스>에는 위로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슬플 때면 신경안정 호르몬인 프롤락틴이 배출되는데, 이 프롤락틴은 무려 오르가즘 때나 출산 했을 때, 혹은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분비되는 호르몬이라고 한다. 슬픈 음악은 우리의 뇌를 속여서 음악이 유도하는 무해한 가짜 슬픔에 반응하게 하여 이 프롤락틴을 배출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각주:1] 때문에 우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우울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사람도 우울할 땐 슬픈 음악을 듣는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말인데, 그럴 때 글루미 선데이를 듣는 건 어떨지... 혹시나 그렇게 우리도 실연의 슬픔에 좌절해 자살, 혹은 치정살인 없이, 기형도의 빈집 같은 시를 쓰게 될지도 모르지 않을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와 같은 아름다운 시를 말이다. 사랑에 빠진 자 시인이 되고, 실연에 빠진 자 시인이 되는 시대를 살아내고 싶은 열망은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는 자들 보단 사랑이 그네들의 세상의 전부였던 자들에게 더 어울릴 것이다.




<글루미 선데이 OST 中 'Down In Budapest'>


  1. 해당 서술은 <책읽기 좋은날>, 이다혜 저, 책읽는 수요일 출판사, p.235-237 에서 인용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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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특징짓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이자 지휘자였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

이미 10대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24세 때 발표한 피아노협주곡 1번에 대한 평단의 혹평으로 말미암아 4년 뒤 28세에 발표한 협주곡 2번.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초연이 실패함으로써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렸을 만큼, 다시 펜을 들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의 열정을 되찾아준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헌정되었다. 

가장 많이 연주되고 가장 많이 들려지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20세기 3대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1915-1997)의 연주

어쩌면 20세기는 러시아(구 소련)가 전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정복했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걸출한 연주자, 작곡자 출신에 러시아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것 같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 합산 1위 국가가 늘 러시아였던 것 만큼이나.



※보다 풍부한 해설과 정보를 얻고 싶으시다면 경향신문 문학수 음악전문 기자의 YES24 칼럼, <30cm 손가락으로 피아노 테크닉 '묘기'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Sviatoslav Richter plays Rachmaninov Concerto No.2 O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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