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be lived

유능하지 않아도 돼, 너 자체만으로 괜찮아

 

“배운 여자는 다 그러냐?” 부끄러움에서 배우다

 
‘배운 녀자’라는 제목의, 꽤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일단 반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남동생이 내게 질렀던 “배운 여자는 다 그러냐?”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의 연이은 실패로 집안의 골칫거리였던 남동생이 밤늦게 집에 들어와 밥상을 차릴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살림을 해온 나인지라 밥상 차리는 일쯤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녀석이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었다. 게다가 마침 나는 학교에서 여성학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니가 차려 먹어”라고 했다. 그러자 그때 돌아온 답이 “배운 여자는 다 그러냐?”였다. ‘재수 없는 녀석’이라 애써 뭉개면서도 마음 한끝이 편치 않았다.


또 하나 있다. 식당에서 식당 노동자로 일하는 내가 같이 일하는 동료 아줌마들과 부딪쳤을 때였다. 육하원칙과 인과관계에 맞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말을 할 때 군더더기가 들어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불필요한 말은 빼고 일이 굴러가는 상황에 꼭 필요한 말만 경제적(?)으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같이 일하는 아줌마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때 그 아줌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잘난 줄은 알겠어. 그런데 네가 뭔데?” 마음속에 찬바람이 몇 주 동안 가라앉질 않았다.

나라는 인간, ‘배운 여자’란 사람들에게 흠집만 내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니 ‘배운 녀자’라는 제목이 촛불에서 태어난 다른 개념의 말이라고 기획자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겐 찝찝한 말이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런 ‘찝찝함’에 ‘부끄러움’을 보태기로 했다. 내가 돌아보기에 가장 부끄러운 기억들, 그런 것들을 보태어 ‘배운 녀자’를 읽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는 소위 ‘인권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께 사람들이 “딸은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보통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못하고, 아빠는 특이하게 “내 딸은 인권운동가”라고 답을 한다. 그럴 때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뭐? 인권운동가? 무슨 독립운동가 같은 거야?” 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곤 한다. 이러니 내가 ‘인권활동가’라는 걸 과연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이른 지금까지 나는 ‘인권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살아왔다.

인권활동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설명을 하자면, 인권활동가란 카멜레온이나 팔색조 같은 사람들이다. 어느 날인가 내가 하루 동안 겪었던 일로 예를 들어 볼까 한다. 오전에는 밥벌이를 위한 식당에서 허리가 끊어지게 일을 한다. 그리고 점심 장사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정부종합청사 앞 집회 장소. 점심 내내 찌개 집게를 잡던 손을 구호에 맞춰 연신 올려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자문위원으로 참석해야 하는 무슨 무슨 회의 시간. 나는 시위대에서 빠져나와 출입증을 달고 어느 관공서에 들어가 공무원들에게 벼르고 별렀던 일에 대한 호통을 친다. 그리고 저녁에는 단체 사무실에 들어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보낼 인권보고서를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한창 바빠 죽겠는데 누가 인권상담을 하겠다고 나를 찾는다. 기본적인 내용 파악을 위한 이야기를 듣는 데만 해도 최소 두 시간.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는데 한편으로 마감이 다가온 원고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게다가 며칠 후에는 또 무슨 무슨 강연까지 잡혀 있다. 나는 괜히 하겠다고 했나 하는 생각까지 하며 애꿎은 달력만 볼펜으로 쿡쿡 찌르며 괴롭힌다.

이렇게 식당노동자, 극렬시위대(투사?), 전문위원, 민간외교사절, 상담가, 집필가, 강연가, 그리고 이 중 어느 말로도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뒤섞어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동안 ‘인권’이란 말을 신조어 취급하던 한국사회는 이제는 어떤 문제에나 ‘인권’을 언급하는 곳이 되었다. 이런 변화가 한편으론 좋은 점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위험하기도 하다. 내가 처음 인권 활동을 시작할 때는 ‘인권’을 최소한 숙연하게 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와 다른 걱정스러운 분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어떤 활동을 하던 간에 ‘인권’은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최후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인권’이라는 말은 절박한 사람들의 최소한의 권리가 아니라 기득권층의 ‘이권’ 다툼의 일부로 변질돼 버린 것 같다. 다시 말해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은 괜히 고상한 취급을 받고, 정말로 인권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작 그것을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잘 차려진 불편한 성찬이다. 성찬은 차려져 있는데 수저를 들 수 없으니 고문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인권활동가로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권 논의를 제자리로 돌리고, ‘인권’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버팀목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만, 때로 길을 벗어나고 비틀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인생의 소중한 깨달음을 준 두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인권을 ‘말’함으로 고상한 대접을 받는 축이라는 것을 늘 일깨워 주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이 친구인지조차 몰랐던, 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이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

첫 번째 사람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 아이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 온 전학생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여자아이에게 나는 참 징글맞게 못된 짓을 많이도 했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까지 예쁜 그 아이가 우리 반에 전학을 오기 전까지, 나는 우리 반에서 뭐든지 제일인 아이였다. 나는 공부도 1등이었을 뿐더러 학급 비품을 몽땅 책임지는 부잣집 딸이었다. 선생님은 늘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오고 나서 처음으로 2등을 했다. 선생님의 관심을 그 아이와 나눠 가져야 했다. 심술이 났다. 2등이 된 것도, 선생님의 관심을 나눠 갖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그 아이와 친하게 지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그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그 아이는 우리 집을 정말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나를 위한, 책으로 가득한 책장과 멋진 내 방이 있었고, 부엌에는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온갖 먹을 것이 넘쳤다. 게다가 나는 늘 풍족했던 용돈으로 그 아이를 포함한 학교 친구들에게 아무 때나 군것질거리를 사 줄 수 있었다. 그 아이는 그런 나와 아마도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친구로 생각하기는커녕 그 아이와는 다른 나의 특별한 위치를 즐겼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도 그 친구 집에 놀러갈 기회가 생겼다. 우리 집이 있는 깔끔한 동네를 지나 고개를 넘으니 산동네가 나왔고, 더덕더덕 기운 누더기 같은 집들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 아이네 집에서, 재래식 화장실에 기겁을 한 나는 다시는 그 아이 집에 놀러가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그 아이를 내 곁에서 떨어뜨려 놓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친구의 슬퍼 보이는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러다 얼마 후 그 아이는 다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다. 아마도 가난에 따른 잦은 이사였으리라. 어쨌든 나는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난 후 1등을 비롯한 모든 것을 다시 회복했다.

그런데 그 다음해,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집은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집안의 모든 물건에 빨간 차압딱지가 붙었다. 책장을 가득 채웠던 내 책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식구는 이불 보따리만 달랑 챙겨서 산꼭대기 단칸방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곳은 내가 무시하고 멀리했던 그 아이가 살던 집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단지 집뿐만이 아니었다. 전학해서 새로 다니게 된 학교에서, 선생님은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이 불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내 상상보다 훨씬 컸다. 어느새 나는 선생님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그런 아이가 되어 있었다.

물론 가끔씩 이름이 불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이름으로만 불렸다. ‘육성회비 안 낸 애’, ‘준비물 안 가져온 애’, ‘방위성금 안 낸 애’ 등이 내 이름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예전에 선생님이 내 진짜 이름을 많이 불러 줬을 때, 다른 아이들의 이름이 결코 나처럼 불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가끔씩 이름을 불릴 때는 ‘멍청이’, ‘지저분한 놈’ 같이 그 아이들의 존재를 후려치는, 그런 이름 아닌 이름으로만 불렸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나에 대한 대우만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인권을 공부하다 보니 저명한 학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나 그 사람이 속한 무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고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지 않는 것이 인권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불릴 권리가 있다. 이름을 지목해 부를 권리가 자신들에게만 있다는 태도, 나(우리)는 주류에 속한다는 사고방식이 인권에 대한 가장 큰 폭력이다. 이런 구절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가 무시하고 상처 줬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꺼운 책에 어려운 말로 설명되어 있는 이런 내용은 오래전 그 아이가 이미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이었다.

미안해요, 옥란 씨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있다. 그녀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80년대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던 나는 집회와 시위로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내가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이라 찾아왔다며, 장애인차별철폐와 고용촉진을 위한 법제정 운동에 함께 참여해 달라고 했다. 나는 ‘민주화 투쟁이 먼저고 다른 문제는 나중’이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생각에 갇혀, 그들의 방문이 도무지 반갑지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함께 국회 앞 시위도 하고, 기자회견도 몇 번 했다. 하지만 그저 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장애인 무리에는 여성 장애인이 딱 한 명 있었다.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녀는 나를 아주 좋아했는데, 자신과 같은 여자가 학생회장이라니 정말 멋지다며 내게 호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그저 어린애라고만 여겼고, 나와 같은 여자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졸업을 하고 인권 운동을 하게 된 나는 ‘다른 문제는 나중에’라는 생각이 얼마나 틀려먹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남몰래 창피함에 얼굴도 붉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 장애인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의 주인공은 장애인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어머니였고,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억척스럽게 노점상을 했던 생활인이었다. 그녀는 장애 인권을 위한 투쟁에 빠지는 법이 없었고, 장애인최저생계비로는 도저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며 복지부에 생계비를 반납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고 나 홀로 장기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녀를 추모하는 자료집에는 ‘장애해방열사 최옥란’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세상살이에 안간힘을 쓰던 그녀는 불의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녀의 약력과 사진을 들여다보다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이 사람 내가 대학 때 만났던 그 애잖아?’ 그녀는 내가 대학시절 만났던 그 장애인 여성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는 ‘애’가 아니라 나와 동갑내기였다. 갑자기 당혹스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 나는 왜 그녀를 애로 취급한 거지?’ ‘그녀는 날 보고 같은 여자라며 좋아했는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거지?’ ‘나는 왜 내가 돕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그녀는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한 걸까?’ 신문 사진 속 그녀는 나를 보며 마치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하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같은 해에 태어난 두 사람이 하나는 장애인이고, 다른 하나는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었구나. 이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결정짓는 것이 바로 차별이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옥란 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권의 성찬 앞에 굶주리다 죽어간 옥란 씨에게 내 후회는 너무 늦었다.  

그 후로도 옥란 씨 같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같이 가자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에게 속도를 줄여 달라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잘 듣지 못하거나 들려도 무시할 때가 많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인권 운동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하는 사람들은 대개 먹고 살기 어려운 문제나 정권의 탄압 등을 답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일등주의의 극복”이다. 평등과 연대를 외치는 인권 활동을 하면서 무슨 ‘일등주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에 밴 경쟁 습관은 인권활동가가 된 지금까지 끈덕지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고약스럽게도 옳은 일을 하는 것까지 일등이 되고 싶은 것이다. 

민주화 운동 세대의 변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것을 변절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의 말인즉슨 그 사람들은 늘 맨 앞에 서는 것, 일등을 하는 것이 삶의 가치였으니, 그것은 변절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일등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운동을 할 때도 일등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했고, 변절을 할 때도 일등이 되기 위한 길에 선 것뿐이니, 그것은 그들의 가치관에서 보면 변절이 아닐 수도 있다. 가슴이 뜨끔했다. 비록 다른 편에 서 있긴 하지만 일등주의를 고집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내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누구나 기쁘게 받아주는 것 당연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사무실도 마련하지 못해서 다른 단체에 얹혀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깊었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선배들은‘깔끔하고 유능하게 일을 처리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항상 강조했다. 민주화 운동 시대의 신념만으로는 이제 부족하고 활동가도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도 ‘깔끔하고 유능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고, ‘깔끔하고 유능하게’ 후배들을 들볶았다.

어떤 후배는 ‘모두들 엘리트라서 숨이 막힌다’라는 소감을 내뱉고 운동을 그만두기도 했다. 내부에서조차 그런 분위기니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연대가 될 리 없었다. 다른 단체와 활동 사업이 겹치는 것이 있으면 견제를 했고, 언론보도에서 내 단체와 이름이 맨 앞줄에 나오는 것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논리와 당위로 아무리 연대를 강조한다고 해도 서로를 향한 눈길과 오고가는 말이 고울 리 없었다.

‘이렇게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면서 무슨 인권 운동을 하겠다고…….’ 내 안의 일등주의가 나 스스로도 너무 싫었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스스로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같은 뜻을 품었던 동료들과 헤어짐을 거듭하면서, 슬픔으로 마음이 몸무게만큼이나 퉁퉁 불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지독한 고립감 때문에 이렇게 계속할 바에는 아예 활동을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나 그런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변화는 사람들에게서 왔다.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인권의 주체로 등장했다. 그들의 등장은 그저 구경꾼으로 ‘논평’하는 인권이 아니라 몸과 삶 전체로 ‘증명’하는 진정한 인권의 등장을 의미했다. 이들과 함께 가는 인권이 되려면 관계도 인권 운동의 속도도, 추진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위계와 나이, 권위와 무게, 성과와 업적 같은 것들을 조롱하며 ‘즐겁게 나란히’를 합창하는 그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조직과 업적 따위는 뜯겨 버려질 포장지 같은 것,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선물 아니야? 내가 애써 발견한 것도 찾아낸 것도 아닌 사람(들)이 내게로 와 준 것 자체가 정말 기쁘지 않아?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니 그냥 기쁘게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잖아. 그렇게 와 준 사람들이니 누구나 기쁘게 환영해 주는 것이 당연하잖아.” 이런 노래 속에서 ‘경쟁’이란 단어는 유치해서 못 쓰는 단어가 되었다. 깔끔하지 않아도 유능하지 않아도 괜찮다, 너 자체로 괜찮다,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우리 안에 저들의 모습을 담고 살지는 말자, 우리는 서로 이런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딱딱한 맹세가 아닌 이런 소곤거림이 점점 더 좋아지게 되었다.

찔끔찔끔 일어나고 있는 변화지만 요즘에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언니’라는 말은 참 따뜻하다. 그 말 안에서 우리는 단체의 소속과 역할에 관계없이 서로의 살림살이와 투쟁을 염려한다. 아프다는 소리가 들리면 당장 달려가 서로를 살피고, 김치와 밑반찬을 날라다 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후원금을 입금한다. 이제 신문 맨 앞줄에 이름이 나는 일은 오히려 창피한 일이 되었다. “진짜 일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하며 미안해하고, 신문에 난 쪽을 오히려 놀려먹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깔끔하고 유능하게’ 속도를 내면 타박을 한다.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말에서 내려 잠시 영혼을 기다린다는 인디언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걷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서로를 토닥인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금이 나는 참 좋다. 과거의 내 ‘악명’을 전해들은 어떤 동생은 “언니를 늦게 만나게 돼서 참 다행이다. 예전에 만났더라면 끔찍했을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선의가 때로는 악의보다 더 나쁠 수 있다. 혼자만 도덕적 영웅처럼 굴고, 결정권은 나에게만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스스로 선의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할 때 말이다. 불평등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하는 행동이 똑같은 시각과 행동을 답습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부끄러움 속에서 얻은 배움이다. 이런 배움을 준 사람들에게 이제는 그 빚을 갚고 싶다. 지금 여기에서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 혼자 잘나서 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어울려서 만들어 내는 일이 내가 갚아야 할 빚이다. 내게 미처 알기도 전에 내게 선물로 와서 깨달음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내가 두고두고 갚고 싶은 소중한 빚이다.

 
류은숙 2007년부터 인권연구소 ‘창’의 활동가이다. ‘창’ 이전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로 일했고, 합해서 20여 년 인권 운동이란 걸 했다. 또한 11년 경력의 식당 노동자이기도 하다. 최근에 낸 책으로 《인권을 외치다》가 있다.
 

원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해 주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만추(晚秋 Late Autumn)』

review 2011.02.20 16:47 by Zetetic



개봉하고 이틀이 지난 19일, 만추를 보았습니다.


저는 ‘시크릿가든’을 보진 않았지만 상영관에 빼곡히 들어찬 여성관객 분들의 모습에서 현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가 왜? 그것도 탕웨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혼자 멜로영화를 보기위해 1년에 다섯 번도 가지 않는 극장을 찾았을까요?


‘만추’ 전 만추라는 단어를 이번에 이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뜻을 찾아 알게 되었습니다. ‘늦은 가을’이라는 뜻이더군요... late autumn...


평소 독서성향도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장르에는 관심이 없어 대학 다니면서 레포트로 써내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은 정도가 제 문학적 소양의 밑천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을... 그것도 늦가을이라는 단어는 저 같은 인간도 동요하게 만든는 충분히 매력적인 단어라고 느꼈습니다. 만추... 정말 그 발음만으로도 뭔가 헛헛했던 마음이 슬며시 시나브로 차오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영화를 보게 된 최초의 계기는 부끄럽게도 그냥 ‘만추’라는 생전 처음 듣는 단어의 이끌림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이후 포털에 만추에 대한 검색도 해보고 탕웨이가 주연이고 대략적인 스토리가 어떻고 베를린에 초청되었다느니 하는 정보들을 접하게 된거구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대략적인 스토리의 개괄만 말씀드리자면, 탕웨이(극중 애나)는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이후 7년간 미국 감옥에 수감되게 됩니다. 모범수로 복역 중 갑작스런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3일간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애나가 버스를 타고 시애틀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차비가 모자란 현빈(극중 훈)을 만나게 되고 이후 두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그 둘은 짧지만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애나는 남은 형기를 마치기 위해 수감소로 복귀, 다시 2년 후 출소하여 현빈과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시애틀의 외딴 쉼터의 카페에서 한조각의 케익과 홍차로 2년 전 그곳에서 느꼈던 훈과의 키스를 회상하는지 어떤지 모를 은은한 빗줄기 같은 입가의 미소로 영화의 스크린은 어두워집니다.


혹자는 아무런 반전도, 흥밋거리도 없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무료함과 지루함에 가까스로 버텼다고 평합니다. 저도 만추가 늘 극단적 상황전개와 우연적 사건의 반복, 그리고 불치병과 순애보가 등장하는 전통적인 과거의 멜로서사였다면 그런 평가에 동의했을 겁니다. 그러나 만추에는 과거 우리가 접했던 초췌한 여배우의 초점 잃은 눈망울과 한 여자를 위한 남자의 헌신적 사랑, 그런 요소들이 전면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이 저에게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 왔구요...




특히나 여주인공 탕웨이는 사람에 버림받고 상처받은 조용한 여인의 생애를 정말로 살아본 것처럼 움직임 있는 ‘애나’를 표현해 냅니다. 호기심 많은 대학생 같은 현빈의 연기와 탕웨이의 깊은 슬픔을 간직한 여인의 연기, 그리고 7년 만에 거리를 걸으며 다시 감옥으로 돌아야만 하는 현실적 상황을 일상적으로 표현해낸 감독.(애나가 감옥으로 복귀하는 길에 옷가게에서 옷도 사보고 귀걸이도 사보고 하는 장면 중에 새로 산 귀걸이가 오랜 옥중생활로 막혀버린 귀 때문에 잘 끼워지지 않는 모습과 버스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가 자신의 차례에서 두 번이나 다시 줄 맨 뒤로 걸어가 선 장면에서 감독의 세밀한 표현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잔잔한 국화차 같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저는...



안개 낀 음울한 시애틀의 날씨와 거리 분위기도 영화의 배경에 잘 스며들었구요...



탕웨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그녀의 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책 읽는 청춘에게 : 21권의 책에서 청춘의 답을 찾다 
우석훈 외 지음/북로그컴퍼니


는 책을 자주 읽지는 않습니다만 가끔씩 알라딘을 훑어 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보관함에 저장해 두곤 합니다. 그렇게 저장해 놓고 잊고 지내다 책을 읽고 싶을 때나 특정한 일이 없이 시간이 날때 보관함의 책들 중 한 두권만 선택해서 주문을 해 보는 식이죠. 요즘은 배송이 워낙 빠르니 주문 하루 뒤면 대부분의 책을 받아 볼 수 있기도 하구요.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 제가 선택한 책은 <책 읽는 청춘에게>입니다.


책의 기본적인 틀은 심플합니다. 7명의 대학 재학생 혹은 졸업생들이 '책꽃이(책에 꽃힌 이십대)'라는 모임을 통해 21명의 멘토들을 인터뷰한 형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한명의 인터뷰어가 3명의 멘토를 인터뷰 했고 본격적인 인터뷰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그와 연관되어 자신이 인터뷰한 멘토에게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깨달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펼쳐놓았습니다. 21명의 멘토들의 청춘과 지금 그들의 입장에서 후학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내용, 그리고 그와 관련된 추천책으로 마무리됩니다.

사실 같은 대학생들이 책을 직접 기획,구성했다는 점 보다 저는 "그 21명의 멘토가 과연 누구이고 어떤 책을 추천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습니다. 저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멘토는 바로 '우석훈'과 '홍세화'였습니다. 특히 우석훈씨의 추천책이 저에게는 가장 신선했습니다. 그 책은 바로 <파운데이션>이라는 SF소설이었거든요. 총 10권의 분량이라 앞으로 읽어볼지 어떨지 자신은 없지만 그가 <파운데이션>을 추천한 이유와 그의 삶의 행보에 대한 언급이 흥미로웠습니다. 그가 <파운데이션>을 추천한 이유에 대해 그는 방대한 세계관과 서로 상호작용하여 새롭게 이어지는 역사와 인간, 그리고 기술의 발전을 통한 미래의 모습을 통해 "커다란 관점을 정립하여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라"고 답합니다. 
                                                       
Fundacion E Imperio / Foundation and Empire (Paperback) - 10점
Asimov, Isaac/Random House Mondadori
       
책을 훑어내려가며 저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몇 구절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승자 독식'만 교육받아온 20대는 늘 성공에만 목말라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 단합하기보다는 친구에게조차 진실을 터놓지 못한다. 친구는 더 이상 마음을 터놓는 동료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할 경쟁자일 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기 위해, 그리고 행동할 순간을 깨닫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진실을 보기란 쉽지 않다. 반면 보이는 대로 믿고 따르는 것은 쉽고 편안하다."

"진짜 원하는 것, 재미난 것을 찾아 도전하라"

다음 제 포스팅의 내용은 인터뷰어 홍세화씨에 대한 언급입니다.

홍세화씨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똘레랑스'에 대한 인식을 우리나라에 도입하신 인물이자,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로 국외추방 되었다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현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계시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저는 홍세화씨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알게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그의 출간된 저작이나 칼럼을 빼놓지 않고 보아 왔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며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장모님 까지 이렇게 적지 않은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또 암울했던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고민해야 했던 그의 내면적 모습과 프랑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지금의 모습까지 한결같이 조국을 사랑하고 약자를 사랑하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굳건한 그 신념은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그를 너무나 큰 사람처럼 느끼게 합니다.

홍세화씨의 삶에 대한 내용은 이미 다른 책에서 읽어본 부분이나 알고있던 배경지식이 있었던 덕분인지 새로울게 없었지만, 그가 추천한 책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어서 도움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그 책은 바로 그의 명언 중 하나인 <자발적 복종>입니다.

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지음, 박설호 옮김/울력
 

대충 제목만으로도 감이 오시죠? 프랑스에서는 마키아벨리이 <군주론>에 버금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데 군주론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이런 평가가 무의미 하네요...

<자발적 복종>에 대한  각성은 정말로 한 사회를 송두리 째 뒤바꿀 수도 있는 엄청난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의 이집트의 상황을 보면 말이죠... 

정리 안된 포스팅이 너무 길어지는걸 방지하기 위해 끝으로 제가 관심있게 보았던 인터뷰이들과 그들의 추천 도서 그리고 홍세화씨의 인터뷰 내용에 언급된 몇 구절들을 옮겨본 뒤 마무리 짓겠습니다. 

"노예로선 편안하지만 인간으로선 죽어간다."

"인간은 자유를 지향합니다. 억압에 의한 복종은 자신이 노예임을 인식하여 저항하기도 하고 벗어나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자발적 복종은 자신이 노예임을 모른 채 편안하게 죽어간다는 의미입니다."

"20대는 무엇에든 굴종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존언함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존엄성을 지킬 수 없어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줄여 나가는 것이 자신을 해방시키는 길입니다."


-기타 인터뷰이(Interviewee)들과 그들의 추천 책

◆최문순-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자유>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자유 
임마누엘 칸트 지음, 빌헬름 바이셰델 엮음, 손동현 외 옮김/이학사


◆송일곤- <백년 동안의 고독>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남윤수 옮김/(주)하서








◆조영욱-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상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까치글방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 12 13 14 15 
BLOG main image
just be lived
0.9%
by Zetetic

카테고리

Posted by Z (45)
thinking about (22)
review (7)
journal (4)
stuff (2)
scrap (6)
classical music (1)
poem (3)